광고

[기고] "시민권 획득한 지역화폐, 속도보다 방향을"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이재환 | 기사입력 2020/06/02 [10:52]

[기고] "시민권 획득한 지역화폐, 속도보다 방향을"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이재환 | 입력 : 2020/06/02 [10:52]

▲ 이재환 지역화폐팀 주무관     ©컬쳐인

드디어 지역화폐가 호적에 올랐다. 그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았던 지역화폐가 지난 5월 1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다.

 

호들갑스럽게 지역사랑상품권 법률안 통과를 경축하는 이유는, 지난 2~3년여 사이 지자체 차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이 물밀듯이 도입되며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들에 대응해야 할 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관련 법률안은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방치됐었다. 일 안하는 국회의 정석을 구현한 20대 국회의 사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전격적으로 통과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이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수단 중 하나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검토되면서 시행을 앞두고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이 역시 긴급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도 일을 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자율 강조한 제정 의미”

 

법률안 원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조례에 근거해 발행․유통하여 지역 내 영세․중소상공인의 소득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으로 명기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지목했다.

 

이어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상품권 사업은 법률의 근거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상품권 발행, 유통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바, 상품권을 불법으로 환전(일명 상품권 깡)하거나 무리한 상품권 유통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상품권을 지방공무원 보수로 지급하는 불법행위가 나타나는 등 명확한 법적 근거 및 체계적, 제도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사랑상품권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존재함’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퍼져나가며 특히 언론이 문제로 지적했던 ‘깡’ 행위에 대한 제재를 명확히 명시한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은 대형마트, 대기업프랜차이즈점 등 지역 내 소비로 생겨난 부가 외부로 빠져가는 통로에서는 쓰이지 못하게 한 대신, 골목가게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소비자 인센티브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환금할 수 있는 가맹점주가 친인척을 동원해 물건을 판매하지 않고 바로 환금을 한 후 차익을 나눠 갖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사업자등록만 한 페이퍼 컴퍼니가 가맹점으로 신청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깡 행위를 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과태료 2천만 원이라는 명확한 제재가 법률에 명시됐고,(위반행위 조사 거부, 방해 또는 기피도 500만 원 이하 과태료) 한국 조폐공사의 상품권 관리 프로그램이 구축됨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 하나가 치워진 셈이다. 앞으로 깡 행위의 유혹거리를 던져준 과다한 인센티브와 범위를 잘 조절한다면 부정유통은 해소될 것이다.

 

​지역상품권이냐 지역화폐냐를 놓고 벌어진 명칭 논란도 해소가 됐다. 법률 제2조(정의) 제1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란 지역상품권, 지역화폐 등 그 명칭 또는 형태와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전자적 또는 자기적 방법에 의한 기록을 포함한다)하여 증표를 발행, 판매하고, …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지역화폐라고 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화폐 운영의 ‘주체’를 명확히 한 점이다.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발행하는 상품권의 발행,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규정하되 그 운영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에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법률을 정해 지역화폐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유통질서 교란을 막을 방도를 구축한 뒤, 세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다는 뜻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법률의 제안이유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마치 통화 질서를 혼란케 할 불령선인처럼 취급받기도 한 지역화폐가 당당하게 양지로 나온 것을 넘어 다가올 자치분권시대에 조응하는 자율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내일’(Demain, Tomorrow, 2015)이라는 영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영화로 알려졌다.(유명한 사람 많이 나온다. 네이버 영화 광고문구가 ‘슬기로운 지구시민을 위한 솔루션’이다.)

 

​영화에서는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아이디어, 화석연료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코펜하겐의 혁신,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정책, 시민참여로 빈곤을 퇴치한 인도 쿠탐바캄의 기적, 행복한 어른을 키워내는 핀란드식 교육 철학 등 인류가 직면한 농업·에너지·경제·민주주의·교육 문제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만날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몇 번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는다. 같은 이슈를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영감이 가득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유럽 각지의 지역화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화는 지역화폐를 단일재배를 통해 무너지는 생태계와 접목해 비교한다. 단일재배가 병과 화재에 더 취약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 전체에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단일화폐 역시 역사적으로 수많은 통화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당시 속절없이 무너지는 달러와 유로에 유럽 각 국가가 입은 타격은 심대했고, 이후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이 중요한 만큼 통화 역시 단일화폐를 보완하는 지역화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영화에서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위스의 유명한 지역화폐 ‘위어’(WIR) 운영자의 설명이었다. 지역화폐가 단일 법정화폐의 대안이 되면 장점을 잃게 되고 ‘같은 병’에 걸린다는 지적이다.

 

대체되는 순간 구체제가 된다. 본질을 잃으면 결국 사라진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달린 전제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지역화폐를 패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비슷하게 적용될 결과이다.

 

  “지역화폐 발전의 3가지 조건”

우리나라의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는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확산의 바람을 더 세게 타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모두 지급 형태 가운데 하나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빠른 확산도 좋지만 동시에 이런 저런 우려를 낳는다. 속도도 좋지만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름 정리해본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ㅇ [지역성] 지역화폐(Local Currency)는 해당 지역 또는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ㅇ [거버넌스] 지역화폐의 이해관계자들이 지역화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ㅇ [지속가능성]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참여자들이 지역화폐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사용해야 한다.

 

먼저 ‘지역성’은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역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남게 된 소비의 부가 지역 내에서 균형 있게 배분되는 순환경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도입한 지역화폐의 최고 목적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모델이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흥시는 대기업 편의점이 시흥화폐 시루의 대상 가맹점이 아니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상 편의점 수만큼 동네 슈퍼마켓이 많기 때문이다. 주유소도 대상이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인근도시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은 관계로 대기업 계열사이기도 한 주유소로 시루 소비가 쏠릴 것이란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지역과 공동체에 맞는 모델, 부합하는 가맹점 기준은 지역화폐 운영의 핵심이며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지역화폐 실적경쟁이 이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지역화폐 발행량이 얼마인지보다 지역 내 소상공·자영업 골목가게들에 실제로 온기가 전해질 수 있는지 설계부터 잘해야 하고 항상 살펴봐야 한다.

두 번째 ‘거버넌스’는 첫 번째 조건을 뒷받침하는 기본 전제이다. 시흥에서 편의점과 주유소가 시루 가맹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결정은 시루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가맹점, 행정이 머리를 모아 결정된 것이다. #시흥화폐 #시루 운영의 최고 심의, 의결기구인 ‘시흥화폐 발행위원회’는 민간의 위촉위원 19명, 시장 포함 행정의 당연직 위원 10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이다. 시루와 관련한 주요 결정은 발행위에서 이뤄지며 분기 1회 전체회의, 월 1회 분과(공동체분과) 회의를 가진다.

 

만일 행정이 지역화폐 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저런 바람에 흔들리다 결국 부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역화폐 정책이 시장·군수가 바뀌자 바로 ‘일몰사업’이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그러다 최근 다시 도입 한 지자체도 있다)

 

​세 번째 ‘지속가능성’은 지역화폐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만 집중적인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막상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 지역경제가 살면 동네 이웃 간 웃음꽃이 핀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게 된다. 사회적자본을 구축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화폐의 본질이다.

 

그런데 속도와 성과를 좇다보니 시민들이 높은 인센티브 혜택의 소비쿠폰 정도로 지역화폐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할 때다. 너무 늦기 전에 나와 이웃이 모두 웃는 협력적 소비, 공생과 공존을 위한 도구로 지역화폐를 자리매김 시켜야 한다.

 

현재 약 190여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3년 뒤에는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자율성은 뒤로 한 채, 패권적 관점에서 휘두르려 한다면 역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본질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기반을 닦는다면 지역화폐는 무엇보다 든든한 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이 글은 인권연대에 게재된 글입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