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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선택한 길

[우리동네 변호사] 서성민 변호사를 만나다

박종남 편집위원 | 기사입력 2015/09/23 [21:22]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선택한 길

[우리동네 변호사] 서성민 변호사를 만나다

박종남 편집위원 | 입력 : 2015/09/23 [21:22]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는 호조벌, 그 황금 들녘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분다. 어느새 가을이다. 성급한 가로수는 하나 둘 노랗게 혹은 붉게 색을 갈아입는 중이다. 눈으로 느낀 풍경이 달큰한 향으로 와 닿는다. 은행동에서 유유자적 시흥들판을 지나 정왕동에 이르니 다른 세상을 만난다. 빌딩 숲 사이에서 비슷비슷한 간판들을 한참이나 읽어내고서야 마침내 만나야 할 주인공의 이름을 발견했다.

▲ 서성민 변호사     © 컬쳐인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봉사'라는 뜻으로, 라틴 문구인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로 변호사가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하는 프로 보노(pro bono). 최근에 프로 보노의 의미는 확장되어 각 분야의 전문가가 공익을 위하여 자신의 전문적 지식·기술·경험 등을 기부하는 활동이나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현재 다양한 곳에서 프로 보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성민(32) 변호사.

안내를 받아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깔끔하면서도 푸근한 인상을 지닌 젊은이가 인사를 건넨다. 마주앉기를 권하고서 정작 본인은 영 쑥스러워한다. 내세울 것도 마땅히 전할 메시지도 없다며 인터뷰에 대한 걱정을 앞세운다.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며 안심의 말을 던졌지만 정작 변호사를 마주한 나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 
 
경기도 이천이 고향인 그는 이사를 오는 순간까지 시흥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연고가 없는 시흥에 둥지를 튼 것은 순전히 같은 건물을 쓰는 선배의 권유 덕이다. 2013년 12월에 사무실과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나니 고향 이천 같은 푸근함과 익숙함이 이곳 시흥에 있었다.
 
그는 사회학과를 전공했다. 방송국에 입사하여 피디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방송국 입사를 준비하는 과정 내내 변호사의 길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우연히 인턴으로 들어 간 ‘희망제작소’에서의 활동이 그를 변하게 했다.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씨의 수행 비서를 하면서 전국각지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꿈을 새로 가졌다. ‘쇼설디자이너’, 사회가 나아갈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가 당시 박원순 씨의 직업이었다.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반드시 정해진 장소와 직업을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박 대표의 말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곧장 그는 로스쿨에 입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2013년 운 좋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6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치고 선배 부름에 응해 시흥에 와 업무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학창시절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자원봉사활동이 생각났다. 사회적기업 홍보동아리 활동부터 대학생 공모사업팀의 작명까지 남다른 애정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의 시간들이 생업에 밀려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시흥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프로 보노를 자청했고 다양한 교육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자체 활동에 이어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에도 등록하여 활동하고 있다.
 
손을 놓고 있었으나 관심이 가고 또 공부도 해 보고 싶은 것이 사회적기업 분야이다. 기업 내부에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사회적기업 내에서도 일어 날 수 있기에 그의 관심과 집중적인 공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 시흥시가 위촉한 우리동네 변호사로 서성민 변호사는 정왕1동의 법률상담을 전담한다.     © 컬쳐인

현재 그는 시흥여성의 전화 법률상담과 정왕1동 마을변호사, 국선변호사와 소송구조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정부에서 위촉한 마을변호사로 고향 이천에도 한 달에 두 번이나 찾아가 상담을 진행한다.
 
말만 전해 들어도 쉽지 않은 스케줄이다. 때로는 상담요청이 밤늦게 오기도 한다. 그래도 자신의 재능을 좋은 일에 쓰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응한다.
 
얼마 전 가족이라고는 병든 노모뿐인 피의자를 국선변호사로 만났다. 교도소에 출소하여 찾은 노모가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경제적 활동이 여의치 않았던 피의자는 노모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절도를 저질렀다. 피해자들과의 합의가 있어야 감형이나 정상참작이 되는 상황이지만 구속 중인 피의자는 그 어떤 행위도 불가능했다. 반복해서 피의자를 만나 사정을 들어주고 반성의 깊이가 느껴지자 그는 발 벗고 나서 피의자를 돕게 됐다.
 
“좀 더 욕심을 내어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으나 변호 분야에 국한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경험을 위해서라도 변호봉사는 계속하고 싶단다.
 
곧 결혼 예정이라는 서 변호사. 얼마 전부터 낚시의 즐거움을 알았다고 한다. 가정이 생기니 취미생활마저 시간의 구애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프로 보노 활동에 할애 된 시간을 줄이지는 않기를 넌지시 압박하고 헤어졌다.
 
건강한 젊은 사고를 지닌 폼 나는 직업인.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이 남음은 그의 능력이 부럽고 그 능력을 재대로 활용하고 있는 그의 선택이 한없이 부럽기 때문이었다.

링크. 시흥시사회적경제 시흥씨 http://blog.naver.com/shssi_100/220489887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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