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의료산업에 생사여탈권이 종속되다-(3)
변현단 연두농장 대표 | 입력 : 2011/08/31 [01:40]
2개월 전에 아버지는 폐혈증까지 동반된 괴사성 근막염으로 죽음의 문턱을 오갔고, 생명을 얻는 대신 다리를 한 쪽 뚝 잘라냈다. 응급실에 실려간 아버지의 생사여탈권은 병원에 달려있었다. 환자에게 의사와 병원은 유일신이다. 현대의학은 기침이 나면 기침 멈추는 것을 주며, 통증이 있으면 진통제를 주며, 설사가 나오면 제산제를 주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준다. 증상에 따른 약이 처방된다. 원인은 무시된다. 아버지가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에 그랬다. 오열이 나서 내과에 갔더니 해열처방을 받았다. 열의 원인은 찾지 않은 채. 인공 관절한 다리 쪽에서 대상포진이 급격하게 일고 피부색깔이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해열제를 먹으면 열은 내리나 병의 원인은 치유되지 못하고 병의 원인은 깊숙이 잠복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 큰 병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말하는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더 큰 병을 얻게 해서 의료산업을 부흥시킨다. 돈벌이를 하는데 병원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의료산업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 간병인, 의료기 기저기 등 소요물품도 병원이 아닌 관련업체에서 구입해야 한다. 분업은 효율성일지 몰라도 분업에 따른 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면 병원과 업체간의 커넥션이 오갈 것이다. 커넥션은 생산 외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며 소비자 부담을 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노예가 될 것이다. 그물망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행위가 진행된다. 키르티무카. 제 살 파먹기이다. 효율관리. 생사여탈권을 쥔 병원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시장이 존립한다. 세분화된다. 의료산업은 분명 더 큰 병을 주기 위한 일시적 약 처방과도 같다.
현대의학이 목숨을 살렸지만 수많은 질곡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장애인이 되어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만들어낸다. 오래 산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공로라고 한다면 무엇에 의존하면서 사는 삶이라면? 예전 같으면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것이다. 감염을 그랬다. 중품으로 쓰러졌던 엄마 또한 아버지가 늦게 도착하면서 그랬을 것이다.
두 분은 장애인으로 살아가시게 되었다. “차라리 돌아가셨으면...” 이런 생각을 했다. 냉정한 생각이었다. 돈이 없으면 두 분을 모시기란 쉽지 않다. 입원비로 형제들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는 노인, 부유하게 잘 사는 자식 넷 누구 하나 부친을 모실 생각을 하지 않아 요양원으로 가는 노인.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자연스러운 죽음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자연에 의탁하는 인간의 참모습을 버리고 돈에 얽힌 병원과 현대의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자연에 의해 치유되었던 그 모든 것이 일방적 희생이나 폭력으로 바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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