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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를 찾아서

[종나미의 도보여행] 답사보다는 여행이다

박종남 편집위원 | 기사입력 2015/08/05 [23:42]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를 찾아서

[종나미의 도보여행] 답사보다는 여행이다

박종남 편집위원 | 입력 : 2015/08/05 [23:42]
용감했다. 너무도. 몽글몽글 올라오는 염려를 애써 눌러 접어두고 선택의 여지없이 따라나선 답사였다. 휴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8월 4일 화요일 당일치기로 잡힌 일정, 그것도 피서지로 인기 높은 강원도 해안으로 가는 답사였다.

동문수학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고 여름휴가를 대신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덤으로 얹었다. 게다가 공부하는 학생으로 순전히 현장답사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것을 감내하리라 어린아이 달래듯 스스로를 다스리며 나선 출발이었다.

우려와 달리 고속도로는 길을 열어 주었고 동홍천 요금소까지는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인제군을 통과하는 국도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미시령터널을 넘어서자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허기진 배는 빵과 과자로 달래보았지만 12시가 넘어서자 지속적으로 알람을 울려댔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내려가는 7번 국도는 양방향 모두 거북이 운행이다. 오후 1시에 임박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속도를 내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눈앞 음식을 전멸시키고 나니 정작 메인 음식으로 나온 메밀국수는 부른 배가 입맛을 까다롭게 높여 남기는 사태를 초래했다. 소나무가 많아 송전이라는 지명을 얻은 마을답게 식당주변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했는데 시간의 압박감은 솔 향을 즐길 휴식을 허락지 않았다.

▲ 선사유적박물관 내부 모형 전시실     © 종나미

▲ 신석기인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는 모형전시물     © 종나미

오산리 유적박물관으로 급하게 이동했다. 학예사와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런 상황에서도 시간을 이유로 학예사의 간단한 설명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은 1977년 주변 호수를 매립하여 농지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약 8,000년 전의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확인된 오산리 유적은 1997년 사적 제 394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신석기 유적이었다는 학예사의 설명이다.

시흥시에도 신석기시대 집자리 유적인 능곡동 선사유적 공원과 섬 전체가 패총으로 이루어져 사적 제 441호로 지정된 오이도 유적이 있기에 남달리 관심이 가는 부분이고 공부도 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 양양 오산리 복원 움집     © 종나미


▲ 시흥시 능곡동 선사유적 공원의 집자리 모습     ©종나미

여행자의 발길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공간이었다. 그동안 양양을 수차례 방문하고 더구나 인근 해안에서 머물기를 여러 번 했지만 박물관을 찾지는 않았기에 오늘 답사의 최종 목적과 의미를 여기에 다 담기로 했다.

시흥의 능곡동 선사유적공원에 있는 움집 복원과 비교가 되는 움집 복원, 그 시대 차이를 알 수 있는 원형의 바닥과 상단에 위치한 까치구멍. 능곡동 집자리 유적과는 최소 2~3.000년의 시대 차이가 보이는 유적이었다.

시간이 없어 많은 것 놓치고 버리고 포기하고 돌아서야 함에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음 여행에 목적지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음을 위안 삼았다.

돌아가는 길이 걱정스러웠지만 당초의 계획대로 낙산사에 올랐다.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지철스님이 손수 해설에 나서 숨은 비화부터 직접 四物(범종과 법고·운판·목어 4가지)을 연주해 주는 시간도 가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목어를 치는 모습은 처음이었고 배 부분을 파내고 그 속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지를 처음 알았다.

▲ 낙산사 시조 배나무     © 종나미

▲ 화마로 인하여 새로이 제작된 사물     © 종나미

첫 방문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가보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해수관음상을 포기하고 홍련암을 택했다. 공영방송 프로인 역사스페셜에서 홍련암 법당 마룻바닥에서 바다를 보는 화면이 각인되었기에 직접 보고 듣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라 스피드를 내어 의상대를 곁눈으로 슬쩍 훔쳐보고는 내달려 홍련암을 찾았다.

▲ 의상대     © 종나미

▲ 홍련암     © 종나미

낙산사 옆쪽 바닷가 암벽 위에 있는 이 암자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광해군 12년(1619)에 고쳐 세운 기록이 남아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고종 6년(1869)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직접 보고, 대나무가 솟은 자리에 홍련암을 지었다는 설화와 석굴 속으로 날아간 파란 새를 따라가 굴 앞에서 7일 밤낮을 기도하자 마침내 홍련이 피었고 그 안에 관음보살이 현신하였다 하여 홍련암이라 이름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10년 전 대형 산불의 피해를 입은 낙산사, 그 화마의 피해를 비껴 간 홍련암은 의상대와 함께 동해안 절경의 화룡점정이었다.

▲ 홍련암에서 바라본 의상대와 홍련암 요사채     © 종나미

아쉬움이야 말로 설명이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갈 길이 멀고 막연한지라 발길을 서둘러야 했다. 5시가 못되어 출발을 서둘렀지만 버스는 어둠이 내리고서도 강원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솔팀장이 휴게소에서 사 준 옥수수 한 송이가 답사 식구들의 저녁이 되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도착 시간이 11시. 차라리 내려놓기 좋았다. 처음에는 기왕에 늦은 귀가,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하나 싶었는데 입맛도 밥 생각도 서서히 사라지고 밀려오는 피곤함에 난민 꼴이 되어 가니 먹는 것은 뒷전이요. 집 생각이 간절했다.

▲ 오이도의 랜드마크 빨강등대     © 종나미

11시에 오이도에 도착하니 패잔병이 따로 없다. 하지만 잠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오이도 빨강등대를 보니 잠시나마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늘이 곧 어제가 되어 새로운 하루에게 자리를 막 넘겨준 상태가 됐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쉬 잠들지 못함은 피곤을 이기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뭔가 부족했던 혹은 간절했던 것이 시간이었음을 알지만 그래서 여행자가 되어 다시 가리라 맘먹었지만 쉬 만족을 불러 오지 않는 아쉬운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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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남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는 시흥시와 함께 늠내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1코스 숲길과 제2코스 갯골길을 개장했으며, 앞으로 제7코스까지 순차적으로 개장할 계획입니다. 그녀의 글 '종나미의 도보여행'을 통해 늠내길을 비롯 시흥시의 아름답고,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길들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그녀의 도보여행은 언제나 항상 함께 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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