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을 더하여'
[종나미의 '도보여행'] 가족이 함께 오른 한라산
 
박종남 편집위원

3년 만이다. 한라산을 다시 올랐다. 삼부자를 픽업해주는 일로 소임을 다했노라 위안하며 딸과 함께 여유를 만끽했던 지난 여행 끝에 티 나지 않게 바닥에 붙어 있다 때때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미련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다시 찾은 제주도. 이번 가족여행의 일 순위는 가족 전원 한라산 산행이었다.

웬일인지 망설임 없이 동행을 결정한 딸에 비해 나의 선택은 혼자 이리저리 널을 뛰었다.

오르지 못할 이유가 많고도 많았다. 운동이라고는 따로 하지 않는 생활, 누구나 쉽게 판단내리는 갱년기, 게다가 10년 만에 찾아 온 감기몸살이 혹여 있을 중도포기의 염려를 보탰다.

하지만 가장 큰 무기가 내게 있었다. 이 모든 갈등과 걱정을 잠재우고 무조건 나서야 하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있기에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컵라면 이상의 대안이 없는 점심, 아침밥이라도 든든히 먹어야했다. 서둘러 밥을 해서 챙겨간 김치로만 한 끼를 해결했다.

성판악 주차장은 이미 여유가 없었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주차 꽁무니를 물고 차를 세웠다. 9, 아이젠 없이 등반 불가하다는 안내방송을 믿고 아이젠과 스패츠로 무장한 산행은 곧 부담스러워졌다. 아이젠은 그야말로 계륵이 됐다. 벗어버리자니 살짝 언 바닥의 얼음이 미끄럽고 신고 가자니 눈에게 원형을 빼앗기지 않고 그 모습 고스란히 드러낸 계단을 오르기가 벅찼다.

아이젠 없이 가볍게 추월해 나가는 전문가들의 포스에 기가 눌리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운 발걸음에 지쳐 아이젠을 벗어 들었다.

 

영상의 기온에 상고대가 녹아 머리 위로 툭툭 떨어졌다. 무리하지 않는 속도를 유지하다보니 아이들과 거리는 멀어졌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여유를 얻어냈다.

▲ 운해 아래로 숨은 서귀포    ©종나미

 

전화로 기다려 달라 부탁해 간식타임 접선을 두 차례하고 도착한 진달래대피소. 12시 통제까지 30분 이상의 여유가 있었건만 자리를 펼치자마자 안내방송이 귀를 자극한다.

정상에 1시까지 가려면 지금 자리를 서둘러 떠나라고 채근하는 방송이 컵라면 하나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없게 했다.

급하게 먹은 점심, 짧은 휴식, 오히려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다행하게도 인파로 인해 상하교행이 힘겨워 기다리는 시간이 필수였던 이전의 산행에 비해 페이스 조절은 쉬웠다.

숨이 턱에 찰 정도의 기나긴 계단 오름의 연속에 짧은 쉼을 하며 뒤돌아보다 얻게 된 풍광은 이번 산행 제일의 선물이었다.

운해가 장관이다. 반쪽은 운해로 가득하고 반쪽은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어 참으로 기묘한 풍경을 보여준다.

▲ 운해와 탁 트인 시야, 같은 곳 다른느낌     ©종나미

 

▲ 계단 난간 사이로 보이는 운해가 장관이었다.     © 종나미

 

105분 전원 정상 도착. 물론 꼴찌를 면하지는 못했다. 5번째로 마주한 백록담. 운이 좋은 건지 정상에 오를 때마다 백록담은 자신을 오롯이 보여준다. 빠질 수 없는 가족사진 찍기. 오래도록 이 좋은 날씨와 멋진 풍경을 감상해도 지루하지 않을 터, 허나 이 또한 하산 종용으로 그리 길게 누리지는 못했다.

 

▲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백록담     © 종나미

 

▲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성판악 코스     ©종나미

 

관음사 방향으로 시작된 하산. 제주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나목의 위용도 여전했다. 물이 흐르고 있는 용진각 아래 계곡 풍경도 겨울에 누리는 호사이건만 짧은 풍경 감상과 찰나의 감탄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계단들. 관음사 코스는 북쪽방향이라 눈이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예상과 달리 대부분의 계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아이젠을 다시 장착하고 내려오는 길은 정말 길고도 지루했다.

 

▲ 제주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관음사 하산 코스     © 종나미

 

▲ 눈에게 양보하지 않고 모습을 간직한 채 이어지는 계단     © 종나미

 

삼각봉대피소부터는 아이젠을 벗었다 신었다 반복하며, 이 길이 빨리 끝이 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타나는 이정표에서 남은 거리만 재고 있었다.

아이젠 없이 내려오다 결국엔 미끄러짐을 피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막내가 보호자를 자처했다. 혼자 심심하게 내려가는 엄마를 위해 느린 걸음에 보조 맞추며 이야기를 건넨다.

두 아이와 달리 잔정이 많은 막내다. 애정표현도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게 잘하는 녀석이다. 해가 바뀌면 20대가 되건만 훌쩍 커진 몸집과 달리 내게는 언제나 걱정스런 막내다. 그런 막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 지루한 하산을 견디게 해 줬다.

겨울산행 치고 하산 시간이 길어 3시간이 걸렸다. 다리가 묵직했다. 땀이 식어 추위가 몰려왔다. 온 가족이 미션을 수행하자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렸다. 배도 고팠다. 휴게소에서 가볍게 배를 채우고 있는 아이들에 반해 급 피곤이 몰려 온 나는 먹는 걸 마다했다.

마른세수를 하다보면 소금기가 묻어나니 따뜻한 물이 그리웠다. 그래도 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가 싶어 금세 어두워지는 바깥을 여유로이 바라보게 된다.

가족 산행, 처음으로 다섯이 함께 오른 한라산. 사고 없이 서로 챙겨가며 산행을 마칠 수 있음에, 감기쯤이야 엄마라는 이름으로 잠재울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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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4 [00:33]  최종편집: ⓒ 컬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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