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고] 돌고 돌아야 돈이다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이재환 | 기사입력 2020/02/12 [19:47]

[기고] 돌고 돌아야 돈이다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이재환 | 입력 : 2020/02/12 [19:47]

▲ 이재환 지역화폐팀 주무관     ©컬쳐인

지역화폐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동네 이웃들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특히 어르신들이 왜 지역화폐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 배경에는 왜 멀쩡한 돈을 두고 또 다른 돈을 만드냐는 힐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럴 때면 ‘그러니까 예전에 어른들이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하셨지 않겠습니까…’로 일단 말문을 연다. 그런 후 ‘그런데 돈이 이름값을 못하고 제대로 안도니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것이지요’라고 답을 한다.

 

대부분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만든 돈은 어쩌라고 무슨 돈을 또 만드냐’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2단계 심층 질문이 오는 경우도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 지역마다 따로 돈을 만들어 지역에서만 돌리면 지역 간 자원의 순환을 막는다는 이른바 폐쇄경제론과 돈을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공히 나오는 이 같은 지적들은 사실 현황자료만 살펴봐도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2018년 11월 발표한 ‘지역소득 역외유출의 결정 요인과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1년에 전국에서 서울·수도권으로 빠져 들어가는 지역소득은 62조3271억원(서울 40조3807억원, 수도권 21조9464억원)에 달한다.

 

좀 더 실감나는 데이터를 살펴보자. 2016년 한국은행이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서울을 제외한 전국 평균 역외소비율은 45.5%이었다. 100만원을 소비하면 45만5천원은 지역 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어디로 갔을까?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저녁이면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하는 나와 대형마트에서 1+1 상품이면 묻지도 않고 집어서 후불(외상) 신용카드로 긁는 너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사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돈이 한 곳으로 쏠려 ‘돈맥경화’를 일으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지역사랑을 운운하며 서울사랑상품권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괴이하다)

 

소위 정통 경제학자는 물론 지역화폐를 엥겔스가 비트코인하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며 일종의 보호무역처럼 보는 쪽에서는 먼저 이 같은 현실에 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가 발생한다는 것도 공허한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2,874조원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0년 전국 지자체 지역화폐 발행목표는 3조원이다. 지역화폐가 인플레를 유발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규모이다.

 

무엇보다 지자체 발행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1 대 1 태환하는 구조이다. 지자체장이 마구 찍어내는 돈이 아니니 문제제기 자체가 문제다. 지역화폐가 법정화폐의 통화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불안에서 나온 이야기일 텐데,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안화폐가 아닌 보완화폐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브리스톨, 프랑스 낭트, 네덜란드 마키 등 6개의 지역화폐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2050년까지 지역화폐를 유럽연합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상한 돈이 도처에 많다

 

시야를 좀 넓혀 보자. 돈이 가진 본래의 기능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의 척도에 집중하고 돈을 숭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축장과 투기의 기능을 거세한 지역화폐가 많다.(아래 소개하는 전 세계 지역화폐 사례는 인천대학교 지역공공경제연구소 이점순 박사의 최근 정리에서 주로 발췌했다)

 

지역화폐의 이론적 배경으로 독일의 경제학자인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 이론’을 꼽을 수 있다. 게젤은 ‘모든 상품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거나 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화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자가 붙어 축적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보고 화폐를 교환의 도구로 환원시키기 위해 일반 재화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는 화폐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걸 실제로 구현한 사례가 등장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겪던 독일의 탄광지역 슈바넨키르헨에서 게젤의 아이디어를 받아 ‘Wear’라는 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이 화폐는 매월 액면가의 2%에 해당하는 인지를 별도로 구입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쌓아놓지 말고 빨리 쓰라는 것이었다.

 

지역화폐 또는 대안화폐의 대명사로 익숙한 ‘레츠’(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는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 지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마이클 린튼이 목재산업 침체로 경기가 나빠진 지역 내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고 컴퓨터에 거래 내역을 공유하는 형태의 ‘녹색달러’를 만든 것이 시초이다.

 

두 경우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경제 불황기에 지역화폐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돈이 안돌면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생각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한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의 거래를 위해 만든 지역화폐의 형태는 ‘레츠형’으로 불리며 현재 전 세계에서 2,000여종이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츠형과 달리 법정화폐 환전 가능여부, 결제방식, 운영방식 등에서 제각각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역화폐가 전 세계에서 1,000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놀랍게 바라보는 것이 시간화폐이다.

 

198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서비스 교환을 통한 공동체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타임달러’(Time Dollar)가 등장한다. 개인의 자원봉사 활동에 따라 발생한 가치를 화폐로 환산해 회원 간 계좌에 등록한다.


타 회원에게 1시간 서비스를 제공한 회원은 ‘+1 타임달러’, 서비스를 받은 회원은 ‘-1 타임달러’로 기록되며 순환한다. 시간이 가치의 척도이며 상호간 부조 및 기부도 가능하다.

 

미국 이타카시에서 1991년부터 시행 중인 ‘이타카 아워’(Ithaca Hours)도 유명하다. 1 이타카 아워는 1시간 노동의 가치를 지니며 1시간 노동은 법정화폐 10달러의 가치를 부여해 실물화폐 형태의 이타카 아워가 회원 간 유통된다. 특히 지역사회 공헌사업 등에는 이타카 아워를 무이자로 융자 해주기도 한다. 이타카 아워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1,000종에 달하며 2015년부터는 전자화폐인 ‘이타캐쉬’(Ithacash)가 주로 통용되고 있다. 

 

이타카 아워는 상당히 성공한 지역화폐 사례이다. 특히 법정화폐가 다국적 기업과 은행에 점점 종속되는데 비해 지역 사회 내 거래를 활성화하고 환경보전 및 사회정의를 고려하는 거래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경북 구미의 사랑고리 화폐가 시간화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아톰이 지역화폐에 등장하는 이유

 

해당 국가 법정화폐와 호환되는 지역화폐도 많다. 

 

프랑스 낭트에서 유통되는 ‘소낭트’(SoNantes) 화폐는 유로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분산시키고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했다. 지역의 경제주체들은 시립낭트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유로화와 소낭트를 1대 1로 교환한다. 지역 내 기업에서 지불 및 저축의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며 기업 간 거래 뿐 아니라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 간 거래에도 활동된다.

 

소낭트는 환경 관련 기업과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등 공공이익을 창출하는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낭트 내 약 2만6천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최근 국내 지역화폐 도입 주체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지역화폐이다. 2012년 영국 브리스톨시에서 자금의 역외유출 완화를 통한 지역 내 소매점 및 시장 활성화, 지역고용 유지 등을 위해 도입됐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시민사회가 주도한 점이다. 비영리단체(공동체이익회사)인 브리스톨 파운드 사무국(CIC)이 지역 은행과 협약을 맺고 시스템을 공동 운영한다. 브리스톨 시는 감사와 홍보 등을 담당한다. 지류권과 ‘Text to Text’ 방식의 전자화폐를 통해 발행하며 소비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0%의 인센티브를 포인트 방식으로 제공하고 가맹점은 결제와 환금 시 총 4%의 수수료를 낸다. 시장이 월급을 브리스톨 파운드로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역화폐를 에코머니라고도 부르는 일본의 사례는 더 재미있다. 2004년 일본 와세다 다카다바바(만화 아톰의 주 무대였던 동네)에서는 지역공동체를 육성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톰화폐를 만든다.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발행하며 지역주민들은 지역사회, 환경, 국제협력, 교육 등 4가지 원칙에 맞는 프로젝트나 이벤트에 참가해 아톰화폐를 획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지정된 레스토랑에서 개인 젓가락 사용, 지역 제품으로 만든 요리 주문, 쇼핑 시 개인봉투 사용, 공공장소 청소, 지역축제 참여 등이다.

 

아톰화폐를 받은 사람은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고 가맹점은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법정화폐로 환금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아톰화폐의 연간 발행액은 2,000만 마력(1마력=1엔)이며 대중교통, 체육문화시설, 친환경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비율은 발행액의 50% 정도라고 한다.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사람들 간의 연대를 소중히 하여 지구의 미래를 지킨다’라는 이념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하니, 그 정신에 딱 맞는 돈이다.


  새해부터 돈 이야기라니…

 

한국에서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지자체 주도형 지역화폐가 위에 열거한 지역화폐와 비교할 때 지역화폐 원래의 목적과 가치를 잘 알고 지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왜 만들었는지 수시로 되새기지 않는 지역화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역화폐는 돈이 안돌아서 생겨났다.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스스로 만든 돈이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동성 현금이 2,874조원이 풀려있고 매월 증가폭이 커지고 있음에도 돈 구경하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돈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인 물(요즘은 긍정적인 표현이기도 하더니만 은)은 썩는다. 핏줄에 흐르는 피처럼 순환되어야 할 돈이 고여 있으면 나라는 썩는다. 만일 그렇다면 안도는 돈 대신 도는 돈을 만들어 쓰면 된다. 

 

자꾸 돈 이야기를 꺼내 면구스럽지만 자,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다.

 


지역화폐란,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지역 소상공·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증진시켜 지역순환경제 구축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 전국 177개 지자체에서 도입 중이다. 대형마트, SSM,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사용자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불편한 소비’에 대한 보상으로 구매 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3,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공동체 회원 간 노동력 등 자원을 교환할 때 쓰이는 매개로 법정화폐와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 법정화폐와 교환(태환)이 가능하다. 또 민간 영역이 아닌 행정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동체 복원’의 목적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복원에 따른 사회적자본 강화라는 비전을 가진 지자체도 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