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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시민교육인가?

이용범 시흥YMCA 이사장, 소설가 | 기사입력 2021/12/01 [08:19]

왜 민주시민교육인가?

이용범 시흥YMCA 이사장, 소설가 | 입력 : 2021/12/01 [08:19]

열여덟 살짜리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습니다. 12명의 배심원들은 사건의 전말을 검토한 후 유무죄를 가리는 투표를 합니다. 투표 결과 주인공을 제외한 11명의 배심원이 소년에게 유죄 평결을 내립니다. 11명의 배심원은 무죄를 주장하는 주인공을 설득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배심원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점점 깊어집니다.

 

▲ 12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 포스터  © 컬쳐인

 

1957년 헨리 폰다가 주연한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배심원들이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룹니다. 영화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주인공이 배심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하여 마침내 무죄 평결을 이끌어냅니다. 만일 배심원들의 결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진다면 소년은 일찌감치 살인범으로 확정되었겠지요. 다수결은 민주주의 장점이자 맹점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국민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민주주의는 의사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국민이 져야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다수가 원할 경우 독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의사결정에 필요한 교양과 합리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를 우매하고 무책임한 이기주의자들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학식이 높다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대로, 믿는 대로, 그리고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추어 판단합니다. 법정에 있는 법률가는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직업의 목적에 맞는 정보를 많이 알고 해결에 필요한 절차를 독점하고 있을 뿐, 일반인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2011년 이스라엘의 가석방 전담판사 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판사들이 식사를 한 후 가석방 승인이 65%에 달했지만, 식사하기 직전에는 0%까지 하락했습니다. 배가 부른가, 고픈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 것입니다.

 

▲ 12명의 성난 사람들 영화 속 배심원들  © 컬쳐인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고 여기지만, 각자가 믿는 진실이 모두의 진실은 아닙니다. 앞에 소개한 영화에서 ‘배심원 11’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겐 책임이 있습니다. 전 항상 민주주의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우린 우편 통지를 받고 여기에 와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있는 겁니다. 이 판결로 우리가 득 볼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지요. 그것이 우리가 힘을 갖는 이유입니다.”

 

개인은 하찮은 존재일 수도, 위대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부터 인정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의 지능은 진실을 알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진화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알아가는 방식은 철저하게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감각은 세상의 극히 일부만을 왜곡해서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놀라운 사회성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고통은 전적으로 다른 이들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은 사회를 필요로 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사회’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아직까지는 인간이 발명한 최선의 사회체계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사회 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타적입니다.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려면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능이 높은 사람이 더 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2008년에 발표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높은 지능을 가진 이들도 낮은 지능을 가진 이들 못지않게 비합리적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능을 높이기는 어렵지만 합리성은 훈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특정한 편향에 대해 설명하고 행동의 결과에 피드백을 주면 개인의 그릇된 편향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합리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세상을 좀 더 합리적인 사람들로 채울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학습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누구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리고 당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공부했든, 당신은 더 배워야 합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이 글은 시흥시민주시민센터 발행 11월 인권다움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관련링크: http://shdec.org/bbs/board.php?bo_table=shdec_newsletter2&wr_i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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