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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연성, 너무 소중해요"

[인터뷰] 정상권 연성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김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0/12/01 [20:21]

"내고향 연성, 너무 소중해요"

[인터뷰] 정상권 연성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김영주 기자 | 입력 : 2020/12/01 [20:21]

날이 매섭게 추워지고 있다. 이러한 때, 따뜻한 마음으로 지역활동가를 묵묵히 지원해주고 있는 ‘2020년 시민대상’에 빛나는 정상권 연성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1958년생)을 만났다.

 

▲ 정상권 연성동 주민자치위원장  © 컬쳐인

 

25년 전 청소년지도자협의회 활동을 시작으로 ‘학교교육’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정상권 위원장은 연성초등학교가 학생 수 감소로 폐교위기에 처하자 소래초에 다니던 아이를 연성초로 전학시켰다. 당시 학생수는 한 반에 2명-15명에 이를 정도로 적은 규모여서 ‘또래친구가 없을 것’을 우려하던 당시 학부모들이 소래초로 다니던 때였다. 연성초는 전학년 학생수가 60여명이고, 소래초는 13반까지 있었다고 한다.

 

정상권 위원장과 아내의 설득으로 본인의 자녀뿐만 아니라 소래초에 다니던 22명의 아이들을 전학시켰다. 연성공영개발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연성초는 폐교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또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연성초는 아파트와 상당히 먼거리에 위치해 있어 ‘통학문제’가 대두되었는데, 당시 고 제정구 국회의원을 만나 고충을 얘기하니, 본인의 봉고차를 줄테니 아이들의 통학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연성초 동문회의 도움으로 도창초를 운행하는 스쿨버스의 연장운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 자부담 50%+연성초 동문회에서 50%를 지원했다. 통학로 문제가 해결되자 안양으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도 전학을 오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6년도 이다.

 

그더다보니 아이가 성장하여 연성중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은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혁신학교로 지정받은 연성중에 체육관 건립을 위해 노력했다. 체육관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한상국 당시 교육위원의 도움을 받아 도비 11억원, 시비 3억원을 들여 건립할 수 있었다. 1999년 운위위원으로 시작해 2001년부터 그만두는 2006년까지 운영위원장을 맡았으니, 어찌보면 최장수 위원장이었다.

 

정상권 위원장은 연성중 체육관 건립을 위해 노력해 온 일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연성동 금호아파트, 대우아파트에서  연성중학교는 근거리이고, 오히려 초등학생이 다니는 연성초가 통학거리가 멀다. 그래서 입주당시에는 아이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느라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했다.

 

정상권 위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하고, 교통지도를 부탁했다. 학교에는 스쿨안전길을 조성하도록 했다. 농어촌공사에는 농로길 수로덮개를 하여 아이들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교문 앞에는 나무숲을 조성했다.


이렇게 학교의 안전 및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오던 중 시흥고에 피해를 불러온 제3경인고속화도로 건설계획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시흥고 운영위원장을 맡게된다. 연성동 태평아파트 주민들과 연성초, 연성중, 시흥고 학부모회,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제3경인고속화도로 반대 대책위원회에 함께하며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그 결과 김문수 도지사와의 면담을 통해 방음터널과 태평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다.

 

정상권 위원장의 또다른 활약은 고등학교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연성초, 연성중이다보니 고등학교도 연성고로 명칭 될 상황이었다. 지역의 아이들이 광명, 안산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연성고’가 아닌 ‘시흥고’로 명칭하여 시흥의 대표학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결과 당시 지역별 소래고, 시흥고, 함현고가 시흥의 명문교가 되었다.

 

시흥고를 혁신학교로 지정받아 초빙교장제를 도입하여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바꿔내고, 기숙사형 체육관을 건립했다. 학교노선 버스도 유치하여 학교면학 분위기 조성에 애를 썼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노력했다.

 

  학교운동은 1996년부터 2009년에 이른다. 

 

제1막이 학교운동이었다면, 정상권 위원장의 제2막은 주민자치이다. 2005년부터 연성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연성동 청소년지도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역시 ‘청소년 운동’에 관심이 가졌다. 2011년 시 협의회장을 맡으면서, 당시 14개동 중 7개동만 결성된 청소년지도위원회를 전체동으로 확대,구성했다.

 

시흥시 청소년지도위원회 회장을 맡아 '청소년 길거리농구대회’를 만들어 건전한 놀이문화를 형성하도록 했고, 유해업소 출입금지 캠페인 활동,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청소년지도위원들과 수시로 회의를 하고, 공무원들과 합동지도를 벌여냈다.

 

연성동 체육회, 연성동 주민자치위원회, 연성동 청소년지도자협의회 등의 3개 활동을 같이할 때는 시간을 쪼개어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는 농어촌공사 흥안지소에서 1978년 근무를 시작하여 2017년 40여년간 근무하고 퇴직했다.

 

또다른 이력은 '시흥시 하중동 208번지, 관곡지'가 그의 삶터였다. 1956년 외할아버지가 건립한 지금의 관곡지에서 19세까지 거주했다고 한다.

 

지역의 토박이인 그는 퇴직하자, 2018년 연성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연꽃, 호조벌, 보통천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으며 환경교육거점센터로서의 ‘시흥마을환경교육센터’로 지정받아 연안습지의 생물다양성을 알아내는 활동을 벌여낸다. 연성마을교육자치회도 구성해 다양한 돌봄과 공동체 프로그램을 구상중이다.

 

연성동 주민자치위원회의 이런 활동으로 2018년 경기도주민자치대회 ‘우수상’, 2019년 전국주민자치박람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연꽃테마파크에서 생태해설사들과 함께.  © 컬쳐인

 

▲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상권 위원장.  © 컬쳐인

 

정상권 위원장은 고양시, 서울시 등에서 연성동으로 벤치마킹을 오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기뻐했다. 연성동은 공동체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 동민들이 ‘살기좋은 곳, 머물고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성의 역사와 문화는 시흥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정상권 위원장.

 

내년에는 연성동 주민자치회로의 발전도 꾀하고 있다. 마을자치의 역량을 강화해서 지역 주민스스로 마을사업을 벌여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

 

 

  1990년 관곡부락 청년회를 시작으로, 1991년도 연성초 동문회 결성, 그리고 연성초 폐교위기 극복

  ...... 2020년.

 

수많은 역사속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당연 연성초 폐교를 막아낸 일, 연성중에서 인성교육을 벌여낸 일, 시흥고에 방음터널을 만들어낸 일, 최근에는 주민자치 평가를 높이 받은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타 많은 수상을 했지만, 올해 받은 시흥시 시민대상을 수상한 일도 기쁘다고 했다. 53만 시흥시민이 주는 가장 크고 기쁜 상이었다. 시민들의 검증을 받은.

 

이런 유수한 활동에 그는 담담했는데, “연성동은 제 고향이에요. 의무감과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소중합니다.”라고 간결히 말했다.

 

인터뷰는 끝이 없었다. 네버엔딩스토리이다.

 

정상권 위원장이 곧 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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