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인시흥 = 김영주 기자] "누구는 다닐 수 있고, 누군가는 다닐 수 없으면 그건 차별의 길이다."
시흥장애인종합복지관(관장 홍갑표), 두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 김유현) 등 장애인단체가 3월19일 오전 경기도 시흥에 있는 한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앞서 시흥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 관리주체는 장애가 있는 주민 공계진씨(64세)의 '계단 경사로 설치' 요구를 "비용이 많이 든다"며 거절했다.
시흥시가 "아파트는 법률로 규정된 장애인 등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라며 "장애인, 노인,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음에도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았다. 대신 A아파트는 이 문제를 주민 투표에 붙였다.
투표 결과 총 240표 중 찬성은 불과 24표, 반대는 130표로 압도적이었다. 나머지 86세대는 기권했다.
"500m, 장애인에게는 무척이나 먼 거리"
공씨는 "500m가, 비장애인에게는 그리 먼 게 아니지만 장애인에게는 무척 먼 거리"라고 후문에 경사로 설치를 요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주민 투표를 실시한 자체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 참가자는 "차별을 없애야 좋은 세상인데, 오히려 차별하자는 투표를 했다. 그 투표 과연 정당한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누구는 다니고 누군가는 다닐 수 없다면 그건 차별의 길"이라며 "온전한 길이 되려면 계단을 허물어야 한다. 시흥에 있는 모든 길은 누군가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기 위한 투표"라고 목소리를 높인 참가자도 있었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15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던 곳이었다. 공씨의 요구로 경사로도 고민했으나 휠체어 운전미숙으로 미끄러져 곧장 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며 "일단 계단+경사로 설치를 하더라도 입주자대표회의와 주민동의 절차를 거쳐야해 가을께나 가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공씨는 기자회견에서 "이 정도 경사면 휠체어 타고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1984년 9월19일 지체장애인 김순석이 마천2동 지하셋방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는 빼곡히 채워진 다섯 장 유서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왜 장애인이 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하는지",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써내려갔다. 2005년 교통약자 이용편의 증진법이 제정되었고,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나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공씨가 제안한 경사로 설치요구 또한 장애인의 이동이 권리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시혜와 동정의 사안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당사자의 경사로 설치제안이 입주민 투표로 가부를 물어야 하는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순석이라는 장애인이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고 외친지 3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중증장애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차별의 턱'은 여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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