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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핀 두륜산, 혹시 천국이 이런 모습?

[1박2일 남도여행]돌아오는 발걸음은 못내 아쉽기만

이민선 기자 | 기사입력 2014/01/03 [12:01]

눈꽃 핀 두륜산, 혹시 천국이 이런 모습?

[1박2일 남도여행]돌아오는 발걸음은 못내 아쉽기만

이민선 기자 | 입력 : 2014/01/03 [12:01]
▲ 눈꽃 핀 두륜산     © 이민선


전라북도 군산을 지날 즈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싸락눈이 갑자기 함박눈이 됐고, 어느 순간 진눈깨비가 됐다. 간간히 눈 폭풍이 몰아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시야가 하얀 장막에 가린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우와 이거 환상적인 기분이네, 눈이 나한테 달려드는 것 같아, 정말 아름다워”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손에서는 땀이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태평하기만 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여행이 주는 설렘만 가득한듯했다.

“환상적? 네가 한번 운전 해 볼래, 그 때도 환상적이란 말이 나오는지.”

“운전하기 힘들어? 잘 달리기에 이 정도 눈쯤은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지. 그래도 쌓이지는 않잖아.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 해”

▲ 월동배추     © 이민선


그러고 보니 함박눈이 내리든 눈 폭풍이 몰아치든 도로에 눈이 절대 쌓이는 일은 절대 없었다. 따뜻한 남녘이라 그런지 눈을 쏟아내던 하늘이 갑자기 비를 쏟기도 하고, 뜬금없이 눈부신 햇살을 쏟아 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땅끝마을’ 해남에서 절정을 이뤘다. 펑펑 내린 눈이 따뜻한 남녘의 기운을 이기지 못해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리기를 거듭했다.

딱 한번, 눈이 쌓인 풍경을 보기는 했다. 여행 둘째 날인 12월29일 아침, 두륜산 국립공원 부근이 밤새 내린 하얀 눈에 파묻혔다. 하지만 그 마저도 채 두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이런 따뜻한 기후가 ‘월동배추’라는 해남의 명물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 아까운 배추를 버리긴 누가 버린다요. 고것이 월동배추란 거요. 저 속이 월매나(얼마나) 단지(달은 지) 아요(일이요)? 한겨울 눈을 맞으면서 배추 속이 꽉 차면 1월이나 2월쯤에 뽑아서 김장을 하는 거요. 참말 맛있지라”

▲ 두륜산 전망대 가는 길     © 이민선


‘왜 아까운 배추를 밭에다 버려두느냐?’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묻자 연세 지긋해 보이는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 유명한 ‘월동배추’도 모르냐고 따지는 듯한 말투였다. 해남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배추가 눈에 띄었다. ‘월동 배추’를 알 턱이 없는 내 눈엔 아까운 배추가 밭 가득히 버려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 얼어버릴 텐데, 어떻게 김장을 하지요?”

“아따, 얼지 않으니까 밭에다 두지요. 해남이 따뜻하지 않어요. 야중에 한번 사먹어 보소, 그 뭐냐 피부에 좋다는 섬유질인가 뭔가가 아주 많다고...도시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끝내준다고 않어요”

인간 이순신의 고뇌가 묻어 있는 ‘울돌목’

▲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     © 이민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첫 목적지인 ‘우수영관광지’로 향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곳이다.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울돌목은, 거센 물결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우는 소리와 같다고 해서 ‘울돌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 시대에는 울돌목과 같은 뜻인 명량(鳴梁)이라고 불렀다.

바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울돌목을 바쁘게 지나가는 물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바람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분명치 않지만 분명 무엇인가 울부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순신 장군 어록 중 가장 유명한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도 바로 이 울돌목에서 나왔다. 이순신 장군은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 외치며 엄청난 적군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부하들을 독려 했다.

▲ 울돌목 거북배     © 이민선


충무공은 이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적극 활용했다. 적을 이곳까지 유인해서 불과 13척의 배로 133척을 물리쳤다. 이 때 대파된 적선은 31척이고, 전함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적선은 92척이다. 이는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승리다.

그런데, 어째서 배가 13척 밖에 없었을까?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잃고 백의종군하던 처지였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은 왜의 수군한테 대부분 패해, 막강하던 해군력을 깡그리 상실했고 원균 자신도 전사하고 말았다.

당시 재상 유성룡 등의 간곡한 건의로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지만 남아 있는 전함은 겨우 12척 뿐이었다. 이를 본 백성들이 어디선가 한 척을 가지고와 이순신에게 준다. 이렇게 해서 이순신 장군은 13척으로 소박한(?) 함대를 꾸리게 된다.

▲ 약무호남시무국가     © 이민선


지금은 신처럼 추앙받고 있지만, 이순신은 분명 인간이었을 터. 13척을 가지고 수백 척의 적 함대를 맞아야 하는 그의 인간적인 고뇌는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이런 이순신장군의 인간적 고뇌가 울돌목에 동상으로 표현돼 있다.

그래서 이동상은 갑옷 차림이 아닌 관복차림이고, 손에는 칼이 아닌 지도가 들려 있다. 이동상은 밀물 때는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썰물 때는 주춧돌 최 하단까지 드러난다. 동상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고뇌하는 모습, 가장 인간다운 이순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충무공 어록비에 쓰여 있는 글귀다.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충무공의 서한문에 기록돼 있는 이 글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 명량대첩비     © 이민선


왜군이 몰려오자 조선 육군은 제대로 싸움 한번 못해보고 패퇴에 패퇴를 거듭했다. 당시 조선 육군이 얼마나 무기력 했는지는 왜가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18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고, 2달 만에 전라도를 제외한 거의 전 국토를 유린 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수군도 마찬가지였다. 왜란 직전에 조선이 소유한 판옥선수는 모두 250여 척으로 추측된다. 난이 발발하자 경상우수사 원균의 함대는 전멸하다시피 하였고, 경상좌수사 박홍은 전세가 불리하자 전선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오로지 건재한 곳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호남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약 한 달 만인 1592년 5월, 옥포 해전에서 승리, 조선에 첫 승전보를 전하고, 7월에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 왜의 보급로를 끊어 버린다.

▲ 벽을뚫고 나온 공룡     © 이민선


이에, 왜는 조선 수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전라도에 부대를 보내지만 진주에서 대패(진주대첩) 한 이후 더 이상 전라도를 넘보지 못하게 된다. 그 이후 전라도는 전란기간 내내 인적 . 물적 자원을 지원, 조선을 보전한 거점이 됐다.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충무공의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닌 이유다.

박물관 외벽을 뚫고 나오는 공룡 보며 ‘쿡’

울돌목에서 자동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자 ‘우항리공룡박물관’ 입구가 보였다. 우항리는 바닷물이 들락날락 하던 바닷가였다. 금호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담수호를 낀 육지로 변했고, 덕분에 퇴적층이 드러나고 퇴적층에 있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 달린 새발자국 1,000여점과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 300여점, 정교한 공룡 발자국 500여점이 한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유명하다. 박물관은 지난 2007년도에 문을 열었다.

▲ 움직이는 티라노사우르스 모형     © 이민선


도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큰 공룡 두 마리가 박물관 외벽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 재미있어 나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이 터졌다. 무심코 ‘저 공룡 이름이 뭐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 거렸는데,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옆에 있던 꼬마가 ‘말라위사우르스’예요 하고 가르쳐 주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갖가지 공룡모형과 뼈 모양 화석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잘 띈 건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르스’가 초식 공룡을 공격하는 모형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처럼 티라노는 사나운 눈을 번뜩이며 곧 잡아먹을 기세로 서 있고, 초식공룡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괴성을 지르며 살짝 움직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관람객들은 자지러지게 소리를 질렀다.

▲ 공룡 뼈 모형     © 이민선


마침, 좀 전에 공룡 이름을 알려 준 꼬마가 옆에 있기에 ‘티라노사우르스가 제일 센가보다’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 꼬마는 “아니요, ‘기가노트 사우르스’가 티라노 보다 더 커요. 진짜 싸우면 기가노트가 아마 이길걸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공룡박사 같은 꼬마의 나이는 9살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그 꼬마는 ‘관광해설사’처럼 공룡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었다. 그 꼬마에게 들은 공룡 이름만 해도 수 십 가지인데, 기억력이 쇠약해 진 탓인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기가노트사우르스’ 하나뿐이다. 아직 머리가 여물지 않은 9살 꼬마가 어떻게 그 복잡한 공룡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우항리 박물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 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제법 굵은 눈발까지 내리니 갑자기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졌다. 다음 행선지인 ‘땅끝관광지’를 포기하고 숙소로 향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여행자의 하루도 저물어 갔다.

▲ 두륜산 케이블카     © 이민선


두륜산의 맑은 공기 덕에 일찍 잠에서 깼다. 방문을 여니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왔으니 올라가야 할 텐데! 온 산을 뒤덮고 있는 하얀 눈을 보니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졌다. 아이젠이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등산을 포기하고 그 대신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눈 때문에 모두 등산을 포기 했는지, 케이블카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넘쳤다. 눈꽃이 활짝 핀 산에 취해 ‘멋지다’를 몇 번 되 뇌이다 보니 케이블카가 멈춰 섰다. 케이블카 도착지점 난간마다 자물통이 빽빽이 매달려 있는데, 자세히 보니 이름과 하트모형 등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연인들이 ‘우리 사랑 영원하기’를 소원하며 매달아 놓은 듯했다.

▲ 자물통     © 이민선


목재 산책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은날엔 제주도 한라산 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그 날은 한라산 대신 온 산에 가득 핀 눈꽃만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더 좋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눈꽃이 핀 두륜산은 환상적인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두륜산을 마지막으로 해남 관광지 순회를 끝냈다. 땅끝 관광지를 못 본 게 못내 아쉽긴 하지만 남녘의 정취를 한껏 누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었고, 소름이 끼치도록 행복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꼭 다시 오마는 다짐은 남겨 두었지만, 남녘의 따뜻함을 내 몸이 기억하는 때문인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내내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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