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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직접 전하는 연두농장 이야기-(2)

변현단 연두농장 대표 | 기사입력 2010/07/09 [21:37]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직접 전하는 연두농장 이야기-(2)

변현단 연두농장 대표 | 입력 : 2010/07/09 [21:37]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나의 첫번째 책 ≪연두≫는 기초생활수급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으면서 지냈던 희로애락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무조건적인 엄마의 역할이었다. 실제로 오랫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있던 이들은 ‘경제적 자립’의 진로를 두려워한다. 자활을 거부하기도 한다. 생활비 계산을 하면 5일 근무에 오전 9시에서 6시까지 일을 하고 최저생계비를 받는다. 최저생계비 외에도 교육, 의료, 각종 공과금에서 혜택을 받고, 심지어 핸드폰 비용도 50% 삭감해준다. 쓰레기봉투는 공짜로 나온다. 쌀도 식구대로 나온다. 쌀이 남아돌아 떡도 해먹고 팔기도 한다. 실제 혜택은 최저생계비 이상이 된다. 소위 짭짤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 이런 제도는 ‘자활’이라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안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지가 말짱한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휴대폰 사용비용 반값 할인이라는 정책을 들었을 때,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소비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그 비용은 기업이 챙기기 때문이다. 4-5년을 그렇게 다양한 기초생활수급자들과 함께 살아왔다. 처음과는 달리 실망도 많이 했다.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나보다 훨씬 사치스럽고 소비적이다. 회의도 많이 일었다. 오히려 그런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제도의 잣대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오히려 제도를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부정수급자도 있었다. 대부분 눈을 감고 그들이 향유하는 것의 떡고물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이건 범죄야’라고 하면서 탈락시키는 일까지 했다. 물론 원망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세상이 그러한 것처럼 그 속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나, 그냥 나 혼자 내 방식대로 살면 될 일을’이라는 생각을 한두번 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아주 힘겨운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길을 모르거나, 길을 알더라도 잘 알지 못하거나, 길을 배우고 싶어도 누가 알려주지 않은 이들이다. 그러나 사실 소수의 그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배움에 신나해하고, 다만 한 가지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 그들은 앞으로 농사를 짓고 살겠다고 했다. 진심이라고 믿는다.

≪연두≫라는 책의 부제 ‘도시를 경작하다, 사람을 경작하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주 건방진 책제목이다. 농사는 무엇보다도 사람농사가 중요한 법이다. 농사도 사람이 짓기 때문이다. 사람을 경작하는 데 겨우 6년, 사실 경작이라는 말 자체가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십년 익은 생활방식과 사고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내 중심적이지 않은가? 그들이 변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보다 사람을 경작하겠다고 나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농사로 알콜중독자를 치료해보겠다고 같이 일을 하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어 알콜중독 치료병원으로 보낼 것을 권유한 사람이 있는데, 연두를 떠나 일주일의 행복한 방탕생활을 한 그를 주검으로 재회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육보시를 하면서 남편이 충격으로 죽고, 이제는 한 남자에게 정착을 했는지 가끔은 얼굴을 마주치던 이도 있었다. 알콜중독, 신경쇠약, 의처증까지 가진 남편으로부터 도망 나와 나의 집에서 며칠 살았던 그녀는 연두의 다른 남성과 눈이 맞아 갑작스럽게 행적을 감추었고, 대신에 그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칼을 들고 나타나거나 거친 말을 쏟아내며 수개월 동안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이렇게 떠난 이들은 대부분 다시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되어 노동력을 팔면서 도시와 네온사인의 휘황함을 부러워하며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6년 동안 해오면서 이제는 안정이 되었지요?”
오늘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들은 질문이다.
“안정이라는 것이 물질적 안정을 의미한다면 여전히 불안정하구요. 구성원도 가끔씩 변하구요. 단지 몇 년 전과 확실히 다른 것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죠.”
“가치와 철학이라, 어떤 철학인가요? 농철학인가요?”
나의 두번째 책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를 읽어본 사람들은 ‘농철학’이라는 말을 한다.

“예, 농철학이죠. 진정한 자활을 하겠다는 거죠. 종속적인 식의주 생활, 소비가 일상인 생활, 돈의 노예가 되는 그런 생활에서 자립하겠다는 거죠. 자연과 어우러져 살면서”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이 참으로 어려운 삶을 나는 화두로 삼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만 6년 동안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벗어난 진정한 삶을 접하게 하고, 오히려 돈으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서럽지 않은 가난으로 더 존중받는 그러한 공동체로 이끌겠다는 나의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허무했다. 가난한 이들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사실은 가장 쉬운데 말이다. 오히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쉽게 포기한다. 왜냐하면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힘겨운 생활임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포기하고 검박한 삶으로 자연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쉬운 삶’을 버리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아가려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의아해한다.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질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연두를 떠난 자, 떠나고 있는 자-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서 연두의 삶이 행복했음을 다시 알게 되거나, 남아있는 연두 식구들이 그렇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저항의 삶, 생태적 상상력
 
“난 아마도 영원히 비주류로 살게 될 거야.”
나는 주류인 적도 없고 주류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나, 누나가 래디컬리스트로 소문났던데? 생태근본주의자래.”
“그래? 근본주의자든 아니든 어떻게 말하든 괜찮아.”
신념을 드러내면 학계든 운동판이든 ‘어떤 파’, ‘어떤 주의’라고 재단하곤 한다. 예전 1980년대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절부터 겪어오는 것인데 이게 새삼스러울 이유는 없다.
“과거를 돌아보는 거야? 과거로 회귀하자는 거야?”
친구가 묻는다.
“아니, 오래된 미래가 있잖아. 과거, 현재, 미래가 어딨어? 그것은 지금 현재에 모두 공존하고 있는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분법적인 서구적 사유체계에 완전히 경도되어 있는 거야.”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는 수탈이다. 연두농부학교에 농사공부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농사는 수탈이다’고 하니 이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여기서부터 문명과 농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마음먹은 귀농이란 것이 무엇인가? 이건 낭만으로만 대할 수 없는 일이다. 농사에 대한 철학이 중요하다. 환상 없이 시작해야 한다. 귀농해서도 돈에 익숙한 생활방식 그대로 산다면 힘겨운 농사가 될 것이며, 자연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탈하는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을 수탈하도록 학습된다. 기독교의 ‘원죄’라는 것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농사는 최대한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소비자’란 말은 없어져야 하며, 착한 소비자로만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내가 하는 얘기의 요지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이번에 낸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라는 책을 보고 누구는 나를 ‘좌파농’이라고 한다. 농에는 좌우가 없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좌파농’이라는 말을 한다. 참 재밌는 일이다. 농의 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결국 반자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닌가?

나는 처음 농사를 지을 때 비닐과 타협하지 않았다. 한여름 햇볕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농장식구들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그런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비닐을 깔까?’ 하면 오히려 그들이 난리다.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만약 처음부터 타협했다면 그들은 지금도 비닐에 의존한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다. 비닐이 없는 농사를 지은 덕분에 약이 되는 잡초음식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나는 생태적 상상력이 풍부한 편인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의 맥을 잡아내면 가지들이 이리저리 쑥쑥 뻗어나간다. 기연불연(其然不然)이다.

“변 대표는 머릿속이 쉴 날이 없을 거야. 하나 생각하면 두세 가지가 생각나지?”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잘 잊어버린다. 그런 나를 자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할 것들이 많으니까 머리가 꽉 차 있잖아. 잊어버려야 비워지지. 비워야 채워지는 것처럼.”
잘 잊어버리는 것은 비우는 것의 일환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이 머릿속에 넣으니 자연스럽게 되려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장에서 자연을 접하면서 하는 일, 즉 땀을 흘리는 일은 몸과 마음을 쉬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사란 일상의 수행과도 같다. <계속>


변현단연두농장 대표. 저서로 ≪연두≫,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가 있다.
연두농장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생산 공동체이자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생태적 철학과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면서 농(農) 운동을 벌이는 곳이다. 2005n 년 국민기초생활수보장법에 의해 조건부생활수급자 및 차상위자를 대상으로 보건복지부 자활근로 사업으로서 시작했으며 2009년 1월 자활공동체로 독립하였다. 지금은 도시 농(農) 운동에 뜻을 두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최소한의 화폐로 행복하게 살기’연습을 통해 진정한 자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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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단 시흥자활공동체 '연두농장' 대표 칼럼명: '도시를 경작하다. 사람을 경작하다' 사회문제와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생태적 사유체계와 삶의 방식을 바꾸는 농(農)철학과 농생활문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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