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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직접 전하는 연두농장 이야기-(3)

변현단 연두농장 대표 | 기사입력 2010/07/09 [21:38]

나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직접 전하는 연두농장 이야기-(3)

변현단 연두농장 대표 | 입력 : 2010/07/09 [21:38]
나에게 두려움이란 없다
 
내 핸드폰을 켜면 바탕화면에 ‘묵연(黙然)하라’라고 적혀있다. 수년째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문구로, ‘말없이 그러하라’는 뜻이다. 내 친구의 핸드폰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라고 적혀있다. 이 문구도 내가 평상시에 즐겨 쓴다. 성경의 “간절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 뜻이 이루어지리라”라는 말처럼. 4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는 ‘수행하는 삶’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길,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스스로에게 어떻게 되기’를 원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묵연하게, 간절히 원하면서.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두려움’이 있었을까? 두려움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것이었을 터인데 그것은 내가 살아온 생애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안정된 자리는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되면 그 호기심을 풀어야 하고, 몸으로 뛰쳐나가 체험해야 한다. 경험주의적 철학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마음이 가면 몸이 갔고, 몸이 가 있으면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에 대한 인상을 ‘열정적’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대전에서 복지운동에 평생을 바쳐오신 권술용님은 나를 ‘불꽃의 여인’이라고 일컫는다. 나를 보면 ‘불같이 자신을 태우는’ 것을 느낀다고 하셨다. 나의 기운이 바깥으로도 그렇게 흐르는가 보다. 그런 나에게 두려움이라는 것을 특별히 느끼고 살아갈 일이란 거의 없다.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 말고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박경리 선생의 말이 살에 착 달라붙는다. 죽음을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노인은 집착이 없다. 스트레스라는 것 또한 없다. 노인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그런 것이다. 한평생을 갈무리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새롭게 생을 시작한 아이들을 돌보고, 고뇌하며 사는 자식들에게 ‘새옹지마’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 지나고 나면 쓸모없는 것들에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집착하여 몸과 마음을 상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노인들은 세상을 다 산 해맑은 ‘미소’를 내어준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왜냐하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이 두려울꼬?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미래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보험도 들고, 축적을 하게 된다. 뭔가 두렵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죽음이나 ‘비참한 생활’이다. 타인과 비교하여 ‘비참한’ 것. 이 사회가 주는 경멸이나 박대 같은 것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거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다. 그저 지금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즉시 하기도 하지만 그냥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기도 한다. 인위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외적인 두려움이 없기에 남들이 두려워하는 위험한 여행도 감행하고, 안정된 직업이나 자리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나의 철학이 무엇이냐가 결정의 기준이 되었다. 예전에 선배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오곤 했던 나에게 “이제 자신의 안정된 자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공공연하게 걱정을 해주곤 했다. 그 당시에 그런 말은 돈 아니면 권력 또는 일상적인 부부생활을 의미했으리라.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도 주변에서는 걱정들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듣지 않는다. 이미 권력과 돈으로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직면하는 삶, 수행하는 일상
 
그렇다면 외적인 두려움이 없는 나에게 진정한 두려움은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내 스스로 속이는 일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라.”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의 출발은 나 자신인데,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한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닥치면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연두농장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또 그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 점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울타리 안에서 나아질 것이 없었다. 지금도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2-3년이든 10년이든 세월이 지나도 똑같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니 고민하는 내용도, 갈구하는 것도, 상황과 만족도도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직면하기가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세상과 직면하기 전에 자신과 직면하는 것, 자신의 무의식까지도 끌어올려 분명히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의 어떤 가치나 철학도 나 자신의 가치나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솔직하게 성찰하고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성찰하는 계기는 다양하게 온다. 수행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요즘 나는 수행하는 일상을 살길 바라고 있다. 조직을 끌어나가고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단호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도 발견한다. 우선은 내게 이 일이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무조건 보듬기’에서 ‘선택적 보듬기’로, ‘무조건적인 엄마’에서 ‘냉정한 엄마’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뜨끔할 때가 많다. 조직이 점차로 비대해질수록, 일들이 내 등 위에 얹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관료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 나는, 조직 또한 생명으로서 운이 다하면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사명을 다하거나 사명을 완수할 힘이 없는데도 조직이 살아있으면 그 조직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한다. 조직도 사람도 병이 든다. 그래서 사람이든 조직이든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심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초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싶어 했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땀을 흘리되, 수탈을 최소화하고, 즐겁게 농사하라는 것.

올해는 농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풀이 무성한 밭을 보며 즐거워하면서도 풀을 매야 하는 것을 고뇌하면서. 작물이 없어지는 날을 위해 밭에서 부지런히 풀들을 익혀나간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묵연하게 살면서 간구하는 속에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기독교신자도 불교신자도 아니다. 단지 막연한 운명이랄까, 그런 것을 신이라고 표현한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의 이유를 준 것처럼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도 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한다. 
 

변현단연두농장 대표. 저서로 ≪연두≫,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가 있다.
연두농장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생산 공동체이자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생태적 철학과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교육활동을 펼치면서 농(農) 운동을 벌이는 곳이다. 2005n 년 국민기초생활수보장법에 의해 조건부생활수급자 및 차상위자를 대상으로 보건복지부 자활근로 사업으로서 시작했으며 2009년 1월 자활공동체로 독립하였다. 지금은 도시 농(農) 운동에 뜻을 두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최소한의 화폐로 행복하게 살기’연습을 통해 진정한 자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시흥시민 10/08/07 [10:21] 수정 삭제  
  마음이 하도 답답하여 세상구경하러왔다, 좋은글, 보고갑니다.
마치 제 마음을 아는냥, 글이 와서 박힙니다.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조금도 피하지 않는것,
그리고, 냉혹하게 평가해보는것,
그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부족하다 싶으면, 받아들여야 겠죠?
지금, 내가 누군지조차 헷갈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도 답답하여 세상구경하러왔다, 좋은글, 보고갑니다.마치 제 마음을 아는냥, 글이 와서 박힙니다.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조금도 피하지 않는것,그리고, 냉혹하게 평가해보는것, 그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부족하다 싶으면, 받아들여야 겠죠? 지금, 내가 누군지조차 헷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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